‘귀여운 여인’의 결말은 귀엽지 않았다
밤밤밤밤밤 밤밤밤밤밤
은근히 다양한 색상을 시도하는데도 어수선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다. 채도가 낮은 차분한 컬러 위주로 선택하고, 엇비슷한 톤을 함께 매치하기 때문이다. 줄리안이 자신의 집에서 의상을 고르는 장면은, 잘라내서 남자들의 스타일링 가이드 비디오로 삼아도 될 정도다. 그는 흐린 카키색 셔츠 위에 같은 색의 줄무늬가 들어간 회색 타이를, 그리고 푸른 셔츠 위에는 남색 타이를 얹어본다. 심지어는 살인 누명을 쓰고 절박하게 도움을 구하러 다닐 때도 컬러 배합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믿는 자여, 나를 따르라. 로스앤젤레스에 가면 천국이 있다. 당신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음반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언컨대 이보다 더한 천국은 없을 것이다. 일목요연하게 늘어선 음반의 행렬이 매장을 가득 채운 채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CD 한 장의 물질이 가지고 있는 얇기로 가늠해볼 때, 도대체 이 안에 몇 장의 CD가 있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매장에서 음악을 들어볼 수 있었는데 만약 이 음반들을 다 들어볼 작정을 하고 듣는다면, 평생 이곳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아메바 칩거 유형'의 인간이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8. 마리포사 Butterfly Toungues 스페인 내전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마리포사]는 그 시대가 폐부 깊숙이 찌르고 들어온다. 이 영화는 더 설명하면 안 될 것 같다. 영화는 아무런 정보 없이, 기대 없이, 준비 없이 볼 때 가장 깊게, 깨끗하게 볼 수 있다. 누군가가 내게 자신이 안 봤을 법한 영화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제일 먼저 꺼내는 영화.
염색을 해보라는 권유는 꿋꿋이 거부하고 있는데 이게 다 리처드 기어와 사카모토 류이치, 폴 뉴먼 때문이다. 은발의 매력을 내게 일찌감치 세뇌시킨 이들이다. 물론 그 정도 미남들이라면 백발이 아니라 삭발을 하고도 근사했겠지만, 아무튼 요점은 이렇다. 세월의 흔적이 꼭 고치고 감춰야 하는 핸디캡만은 아니라는 것. 개인적인 의견일 수도 있으나 위에 언급한 셋은 머리카락이 희끗해진 뒤에 오히려 미모의 정점을 찍었다고 본다.